깔끔한 로비가 나를 반기며 이 호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로비에서 키를 받고 7층으로 올라가자 복도에서 나는 오묘한 두리안의 괴랄한 향기는, 작년에 갔던 필리핀 마닐라의 과일 시장을 추억하게 한다.
방으로 들어오니, 심플함이 나를 반긴다. 너무 심플해서 칫솔, 치약은 물론 에어컨 리모컨 까지 없는 미니멀리짐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수건에서는 마치 사업에 실패하여 벼랑끝에 몰린 사나이가 장마철 반지하 단칸방에서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듯한 냄세가 난다.
방안에는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당 수의머리카락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만약 이방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면 수많은 사람이 용의자로 지목 될 것이다. CSI 는 아마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제주도의 습기 탓일까? 방안에 가늑한 눅눅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에어컨을 켰다.
새로 장착한 깨끗한 에어컨이었다.
에어컨 날개가 열리며 안쪽을 바라보는 순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명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떠 올랐다. 석탄을 열심히 나르던 '스스와타리' 들이 지긋 지긋한 노예 생활을 뒤로하고 머나먼 제주도 땅으로와 이 호텔 에어컨 날개에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을 하니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을까 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제주도에 왔으면 바다 바람으로 열기를 식히는 것 또한 낭만 이겠지...
창문을 열자 강열한 어선의 태양과도 같은 밝은 빛이 방안을 가득 비춘다. 밤에 조명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선과의 확성기 대화는 마치 내가 선원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창문을 닫아도 들리는 쩌렁 쩌렁한 소리는 강렬한 카페인과도 같이 나의 밤잠을 몰아 냈다.
간신히 잠을 청하고, 깊이 잠이 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벽부터 위층에서 들리는 엄청난 층간 소음은 마치 마이클베이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폭파 장면의 조연출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강렬한 비트로 나 몸과 마음은 금세 지쳐 간다.
아침에 지친 몸을 씻기 위해 따뜻한 물을 틀었으나, 30분이 지나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 주인은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고, 찬물로 정신을 차리고 나가라는 배려이었던 것 같다.
이 호텔은 당신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해 줄 것이다.
5만원정도는 지나가는 불우이웃에게 서슴없이 줄 수 있는 당신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