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22호인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로 강화 12진보 중 하나예요. 구한말 신미양요 사건으로 미국 극동함대와 치른 광성보 전투는 군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정신으로 무장한 어재연 장군의 조선군과 미국 해군과의 치열했던 전투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열악한 화승총과 칼로 무장한 600여 명의 조선군이 최신 무기로 무장한 1,200여 명의 미국 해군에 맞서 장렬하게 순국한 전투예요.

미군 전쟁사에 48시간 전쟁으로 기록된 신미양요의 광성보 전투는 백병전 끝에 패한 조선군의 피해가 너무 처참하여 미군조차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투로 전해지고 있어요. 매년 음력 4월 24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불굴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광성제는 신미양요의 처참했던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죠. 광성보가 있는 강화도는 고려의 항몽 투쟁과 조선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구한말 서구 열강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마다 서울의 주요 방어기지이자 왕실의 피난처가 된 군사요충지예요.

남과 북의 강물이 흐르는 바다를 따라 걸으면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던 12보와 50여 개의 돈대를 만나게 되는데 이 길이 호국돈대길이에요. 솔숲 그늘과 어우러져 반듯하게 다듬어진 돈대길을 산책하면서 염하와 손돌목의 물살을 감상해 보세요. 최고의 낙조 전망대로 알려진 장곶돈대와 동막해변 위의 본오리돈대에서는 환상적인 낙조와 마주하실 수 있어요.

인천 광성보 - 인천의 가볼 만한 곳 베스트 10에 소개된 하이라이트(여기에서 인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인천 광성보의 역사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광성보의 역사는 몽골의 침략에 대항했던 고려 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요. 역사상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고려의 실권자 최우는 1232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바닷길을 따라 강화산성을 짓게 하였어요. 이후 효종 때인 1658년 광성보를 설치했고 숙종 때 돌로 쌓아 성을 완성했죠. 광성보는 군사적 요충지인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이자 강화 12진보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총사령부였어요.

광성보는 1871년 구한말 신미양요 때 미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였어요. 조선군은 통상 교섭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던 미국 극동함대를 맞아 초지진, 덕진진, 덕포진에서 물리쳤어요. 하지만 전열을 정비한 미군은 4월 23일 초지진에 상륙하고 하루 만에 덕진진을 점령한 뒤 광성보까지 쳐들어왔죠.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 장군과 조선군 600명은 화승총과 칼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열악한 군사력으로 끝내 함락당하고 400여 명이 전사하고 말았어요. 전사자 3명과 10여 명 부상자만으로 승리한 미군조차 이 전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치열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총알이 떨어진 조선군은 칼로 대항하고 팔을 못 쓰게 되면 입으로 물며 덤비면서 진지를 사수하다가 죽어 갔다. 국가를 위하여 이보다 더 장렬하게 싸운 군인은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는 기록을 남겼어요. 순국한 어재연 장군 형제를 기리는 쌍충비각과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용사를 위한 신미순의총이 세워져 있어요.

인천 광성보를 즐기는 방법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한 광성보는 숲과 해안이 어우러져 있는 싱그러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어요. 성문인 안해루를 지나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따라가면 쌍충비각과 광성보에 소속된 3개의 돈대와 강화전적비를 만날 수 있어요. 광성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용두돈대는 용머리처럼 길게 쑥 내민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부드러운 암반의 곡선을 따라 세워져 마치 서양의 성벽을 연상케 하는 멋진 교두보예요.

바다가 훤히 보이는 높은 곳에 있어 감시와 방어에 큰 역할을 한 손돌목돈대에는 무기고와 포좌가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광성돈대에 설치한 홍이포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포 뒤쪽 구멍에서 점화해 사격하는 사정거리 700m의 포구 장전식 화포에요.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어재연 장군 형제와 무명 용사를 기리는 쌍충비와 신미순의총을 찾아 삼삼오오 모인 참배객들이 꽃다발을 내려놓고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숲길 뒤로 드러난 하늘을 지나면 돈대 아래로 거센 물살이 일렁이는 손돌목이 보여요. 물결 주변의 소용돌이가 사라졌다 생기기를 반복하며 강화해협을 수놓고 있어요. 치열했던 광성보 전투의 기억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흔적으로만 남아 있지만 굽이쳐 흐르는 바다의 거센 물살만큼 강렬한 호국의 기운을 느끼실 수 있어요.

인천 광성보에 관해 알아 두면 좋은 것

트레킹 코스인 호국돈대길은 가장 멋진 풍광을 지닌 광성보의 용두돈대와 손돌목돈대를 품고 있어요.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에 용머리 모양으로 돌출된 암반 위에 자리해 있고, 염하에서 물살이 가장 거칠게 지나는 여울목인 손돌목 위에 있는 손돌목돈대에선 강화 해안 일대와 소나무숲이 훤히 내려다보이죠. 염하는 강화도와 김포시 사이를 흐르는 좁은 해협인데 좁고 물살이 빨라 마치 강처럼 보인다고 하여 염하라고 불러요.

전설에 의하면, 고려 고종은 몽골군이 침입할 당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배를 타고 임진강과 한강을 거쳐 염하를 지나게 되었어요. 물살이 빨라 배가 흔들려도 사공이 태연하게 급류의 한 가운데로 배를 몰자 고종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의심을 품고 신하에게 사공을 참수하라고 명령했어요. 사공은 죽음이 닥친 순간에도 왕의 안위를 걱정하여 표주박을 주고 이것이 떠내려가는 대로 따라가면 뱃길이 트일 거라는 말을 남겼어요. 왕의 일행은 표주박을 따라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고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게 됐죠.

사공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묘지를 만들어 주고 사당을 지어 넋을 위로했다는데 이 사공이 바로 손돌이에요. 김포의 덕포진에 손돌묘가 있어요. 후세 사람은 이 뱃길목을 손돌목이라 불렀고 음력 10월 손돌의 기일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그리고 이때 찾아오는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해요.

인천 광성보

주소: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운영 시간: 09:00~18:00